연예

못 생겨서 가요계에서 팽당했던 그의 감동 일대기

작성일 : 2021-02-05 13:38 작성자 : 김인환 기자

[열린사람들=김인환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2달 넘게 사회적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되고 있다. 국민들의 피로도는 극한의 상황까지 도달했고, 주변에는 임대문의라는 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다. 전세계 팬더믹 선언이후 전세계는 우울한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신이 개발되어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귀가 기울여지는 음악이 있다. 바로 그룹 거북이의 노래이다. 몇 곡을 제외한 모든 노래는 모두 희망찬 가사와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희망찬 노래는 한때 데뷔 전에 은퇴할 뻔한 터틀맨=임성훈에 의해 모두 작사 작곡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늘은 터틀맨이 왜 이런 희망의 곡들을 썼으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나누어 보고자 한다.

터틀맨, 본명 임성훈. 2000년대 아이돌과 소몰이의 유행 속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그룹 거북이의 레퍼이자 리더이다. 대중들에게는 특유한 묵직한 목소리로 많이 알려져 있다.

 

터틀맨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을 살리기 위해 작곡을 배우고자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독학을 하게 된다. 공식적인 그의 첫 작곡은 거북이 2집에 실린 왜이래라는 곡이다. 이 곡은 중학교 2학년 당시 그가 처음으로 작곡한 곡으로 거북이의 히트곡 중 하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터틀맨이였기에 작곡할 때 코드를 기타로만 잡는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데뷔가 늦은 가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가지 사연이 있다. 터틀맨의 아버지육군 투스타 소장 출신의 장군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심장질환이라는 갖고 계셨다. 터틀맨도 이러한 지병을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군 면제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현역장교로 자진입대를 했다. ‘심장질환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는 1997년 일찍 돌아가셨다. 그는 이러한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장군에게라는 곡을 제작했고 이는 거북이 2집에 수록되며, 유일하게 터틀맨 혼자 전곡을 부르는 유일한 수록곡이다. 이곡은 2003년 콘서트 때 딱 한번 라이브로 불렀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할 점이다.

 

터틀맨의 군이야기에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가 군복무를 하고 있을 당시 전부터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군인 특성상 함께 있기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연인을 이어줬던 것은 매일 같이 주고 받던 편지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았고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이에 터틀맨은 크게 좌절감과 상심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여자 친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여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는 자신을 매우 자책했다. 자신이 자진 입대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뒤로 그는 순정을 지키며 결혼은 물론 연애도 하지 않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그가 곡을 제작하는데, 그 곡이 2집에 수록된 ‘10년이 지났지만이라는 곡이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가요계 노크를 시작한 터틀맨. 노크까지는 허락됐지만 진입은 허락되지 않았다. 앨범제작사들이 그에게 못생겼다는 이유로 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차 여차 그룹 거북이를 결성하여 기획사까지 들어갔지만, 회사에서는 원년멤버 지이가 메인보컬로서 마음이 안든다며 갑자기 빼라고 지시한 것이다. 자신 때문에 팀에 합류한 지이이기에 터틀맨의 고심은 깊어졌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는 지이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지이야 나는 너와 꼭 함께 하고 싶다. 그런데 회사에서 너가 메인 보컬로 마음에 들지 않다고 빼라고 하는데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보니 너가 랩도 곧 잘하는데 래퍼로 포지션을 변경해보면 어떻겠니?”

이말을 들은 지이는 수긍했고 터틀맨은 회사를 설득하기 나선다. 그리고 성공한다.

 

우여곡절 끝에 데뷔한 터틀맨과 거북이. 그러나 데뷔는 폭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북이의 1집 타이틀곡이 사계로 알고 있지만 사실 타이틀곡은 ‘let’s 북이였다. 시작도 이 곡으로 먼저 했고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기획사도 거북이를 포기하려는 그때, 터틀맨은 문득 아이디어를 낸다.

아니? 대중에게 익숙한 곡을 리메이크 해보면 기본적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는 될 수있지 않을까?”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터틀맨은 곧바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들을 찾아 다녔다. 그중 그의 귀에 들어온 노래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였다. 동요로도 곧잘 불리던 노래였다. 이거다 싶었던 터틀맨은 곧바로 리메이크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대박

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느껴본 대중의 사랑에 터틀맨은 항상 자신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당시 음반시장은 테이프에서 CD로 그리고 MP3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특히 테이프는 음원 공식집계가 되지 않을뿐더러 이윤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많은 가수들이 발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터틀맨은

트럭 운전하시는 분들이 우리 노래를 많이 듣는데, 트럭에는 시디플레이어나 MP3를 지원하지 않는다

라며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아야 된다 테이프 발매를 고집했다.

사계에 이어서 3집까지 연이은 히트를 친 터틀맨에게는 3가지 철학이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균등한 파트 분배

이다.

 

2집부터 원년멤버 수빈이 빠지고 금비가 합류했는데, 이러한 철학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터틀맨의 철학에서 비롯된 구성원에 대한 사랑은 3집 후속곡 빙고에서 또 한번 엿볼 수 있다.

직접 작사 작곡을 한 터틀맨. 그는 3집 후속곡 빙고가사에 멤버들을 이름을 몰래 숨겨놨다. 이는 가사를 세로로 봤을 때 확인 가능하다. 터틀맨, 지이, 금비.

 

두 번째는 라이브이다. 거북이는 모든 공연을 무조건 라이브로 진행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멤버들의 재능을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었던 리더 터틀맨의 마음이 투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세 번째는 희망이다. 유난히 거북이의 노래 가사를 보면 희망과 위로를 주는 가사들이 많다. 이는 그가 처음 가수 활동을 시작할 때 많은 래퍼들이 비속어를 쓰며 우울한 얘기를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는데,

래퍼도 비속어를 쓰지 않고 대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라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연이은 히트 속에 사건이 발생한다. 터틀맨은 3집 활동을 마치고 자신의 지병인 심근경색이 악화되어 쓰러진 것이다. 당시 의사는 30KG이상 체중을 감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며 그의 체중감량을 권고했다. 중환자실에 입원 할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무의식 상태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간 멜로디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이를 기억해두었다가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4. 최악의 상황에서 작곡했던 그 곡을 타이틀 곡으로 선정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그 곡이 바로 거북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등을 안겨주었던 비행기라는 곡이다. 이곡은 당시 유행했던 멜로디와 다르게 동요 같은 멜로디와 동심으로 돌아가는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비행기1위를 기록하며 명예, 인기 모두 갖게 된 터틀맨. 그는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더 나누어 주기 위해 스페셜 앨범들을 내며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러던 5집 후속곡 ‘My name’ 활동 중이던 200842. 200342. 첫 발병 이후 정확히 3년 후, 200842일 수면 중 심근경색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대중들은

만우절 장난이냐?” 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중들한테 항상 웃는 얼굴로 희망을 주었던 터틀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난 이는 사실이었다. 거북이 멤버들에 따르면 사망하기 바로 전날 유난히 멤버들을 끝까지 마중 나왔다고 한다. 원래 그런 오빠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인성과 대중을 위한 배려가 다시 한번 화제가 된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방송인 김구라는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해 그를 추모하며 그리워했다. 이외에도 주변인들에게 항상 위로와 희망이 되는 존재였다고 한다. 특히 MC스나이퍼는 터틀맨을 위해 추모곡 ‘Letter To Heaven’을 발매했는데, 가사 내용을 보면 권위의식 없이 9살 어린 동생과 친구처럼 지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터틀맨이 2003년 처음 쓰러진 이후 실제로 몸무게가 감량 되었는데, 이때 목소리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대중들은 나의 특유의 묵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좋아하신다. 내가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더라도 대중들의 사랑에 보답하려면 살은 빼지 않겠다

대중을 위한 배려가 결국 그 자신에게는 독이 된 것이었다.

터틀맨은 사망 후 화장을 했고,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된다. 그런데 멤버들은 오방 마을을 보고 크게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터틀맨의 마지막 활동 앨범이 오방간다였기 때문이다.

 

못 생겼다는 이유로 가요계에 발 조차 딛을 수 없을 뻔했던 터틀맨. 어렵게 시작할 수 있었기에 가족과 구성원, 대중들의 사랑을 더욱 나누고 싶어 했고 실제로 나눴던 그의 짧지만 족적을 남긴 그의 인생. 그래서 아직도 희망곡하면 1순위로 뽑히는 노래가 터틀맨이 작사 작곡한 거북이 노래라고 생각한다.

 

모든이에게 희망과 위로를 줬던 터틀맨과 그의 노래. 아직도 많은이들의 음원목록에 남아있는 그의 노래를 가슴에 품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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