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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워너비 영원한 리더 채동하의 삶

작성일 : 2021-09-28 14:34 작성자 : 김선재 기자

 

'팝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Simon & Garfunkel Wannabe) 같은 그룹이 되고 싶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SG워너비. 이 팀의 영원한 리더 채동하는 1981623일 생으로 본명은 최도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SG워너비의 원년 멤버이자 리더이다.

 

어린시절부터 힘든 가정 형편 속에서 성장한 그는 6살 때 심실 중격 결손증 수술을 받는 등 유복한 유년기를 지내지는 못했다.

 

그의 재능은 고3때 처음으로 발휘되는데, 당시 첫 재능은 댄스였다. 고등학교내 AD ONE의 멤버로 활동했다. 어린시절부터 가수와 작곡가의 꿈을 가졌던 채동하지만, 첫 시작은 댄스였던 것이다.

 

이후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한 그는 기획사 관계자들이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친구의 오디션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이때 채동하가 오디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따라간 것인데, 김형석이 뜬금없이 그에게 임창정의 날 닮은 너를 시킨다. 이에 김형석은 내일부터 나와서 연습해라라는 말과 함께 친구가 아닌 채동하를 덜컥 기획사로 스카웃한다.

 

여기서 채동하의 보컬 실력을 먼저 짚고 넘어가보자. SG워너비 속 김진호 파트가 많아서 채동하의 가창력이 많이 가려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김형석 작곡가는 채동하에 대해 박효신과 조성모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작곡가도 조성모의 여러 히트곡을 썼던 이경섭 작곡가가 이후 채동하의 1집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을 정도이다.

 

그는 저음부터 3옥타브가 넘어가는 고음까지 소화 가능하며, 록 스타일의 곡도 잘 소화하곤 했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아우르는 넓은 음역대, 감미로운 음색, 안정적인 발성, 훌륭한 성량, 애절한 감정표현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뛰어났다.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쇳소리, 고음에서는 맑고 고우면서 힘 있는 미성이 특징이다. '어제 같은데'에선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까지 올라간다.

 

본론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김형석에게 스카웃 된 채동하는 김형석의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에서 2년간 연습기간을 거친 후 2002‘Gloomy Sunday’라는 곡으로 데뷔를 한다. 여기서 그는 박선주에게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1214일 데뷔무대를 윤도현의 러브레터마친 그는 후속곡 차마까지 방송활동을 이어간다. 당시 데뷔 앨범이지만 음반 판매량 순위 차트에서 40위까지 랭크되며 신인치고 선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해 23일 회사가 보도가 나면서 활동을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준비과정에 비해 짧은 시간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며 한창 대인기피증으로 집밖에도 나가길 어려워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김광수의 GM기획으로 회사를 옮겨 활동을 준비하는 그는 훗날 SG워너비의 멤버였던 김용준과 듀오 활동 멤버로 뽑히게 된다. 그러던 중 김진호가 들어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채동하, 김용준, 김진호의 SG워너비가 결성된다.

 

2004’timeless’로 다시 대중에게 나타는 그는 처음 회사 정책상 얼굴없는 보컬그룹으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점차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2죄와벌살다가가 대히트를 치며 우리나라 가요계에 유일무이한 괴물 보컬그룹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전성기는 3내 사람으로 절정을 맞이하는데 이때 앨범 판매량 1, 골든디스크 대상 2, MKMF 대상 수상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기획사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젖는다고, SG워너비를 쉴새 없이 굴리기 시작한다. 결국 당시 리더였던 채동하는 20066월 좌측성대마비에 걸리게 된다. 다행히 후에 완치되었지만 이때 기억이 떠올라서 그런지 20071214일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아리랑으로 대상을 받을 때 오열했다.

 

이후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채동하는 2007년 추석 즈음부터 재계약과 관련하여 회사와 논의를 한다. 그러나 재계약에는 실패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회사는 채동하는 연기자 활동을 위해 팀을 나간다라고 언플을 시작한다. 그러나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살인적인 SG워너비 스케줄과 더불어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 휴식이 필요했다고 회사에 얘기를 했고, 소속사는 이를 거절하자 본인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동생들까지 쉬게할 수는 없어 재계약을 포기하고 팀을 탈퇴한 것이었다.

 

당시 채동하는 끝까지 가수로서 SG워너비 리더로서 동생들을 책임지고 싶어했다. 그래서 휴식 후 활동을 기획사에 제안했지만 이것이 묵살 된 것이다. 이에 기획사는 채동하 연기자 도전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2008126일 일본 포니캐넌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SG워너비 탈퇴를 발표하지만 그해 3월 조영수의 ‘ALL STAR’앨범에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427일 인기가요 무대와 58일 일본 도쿄 콘서트 ‘My Friend Forever’콘서트도 참여한다. 또한 2008615SG워너비 울산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며 기획사에서 말한 연기자썰은 그냥 언플이었던 것으로 스스로 증명한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혹독한 일정을 치뤘는 지에 대해서는 한가지 예만 들자면 그는 MtoM의 멤버로서도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탈퇴 이후 20089월 뮤지컬 안녕, 프렌체스카역할을 맡은 채동하는 그듬해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OST를 맡으며 다시 가수활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린다. 그리고 20092번째 솔로 2‘Essay’를 발표한다. 당시 14개월 간 복귀하는 무대인 만큼 엄청난 공을 들였던 채동하는 그 부담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목디스크 판정과 성대결절이 겹치며 예정 일보다 늦은 11월에 컴백한다. 안타깝게도 목디스크가 결국 발목을 잡아 활동을 짧게 마무리하게 된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이 앨범은 채동하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과 자신의 수필이나 심정을 풀어낸 앨범이었다. 특히 10년 전부터 써오던 일기장을 발췌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릴적 이야기와 SG워너비 리더로써 겪어야 했던 심적 부담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대표적으로 앨범 자켓에 적힌 글 귀중 난 어려서부터 남들과 달랐다. 슈퍼맨, 에스퍼맨, 우주인, 난 이런 거랑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6, 작은 몸에 새겨진 수술 자국슈퍼맨이 되는 순간이었다. 남들처럼 잘 뛰지도, 잘 놀지도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등을 토닥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나는 긴 숨을 이어갔다.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노래다. 노래... 노래가 하고 싶다...’문구가 있다.

 

2집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20199월 약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신규앨범 ‘D day’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2집보다 더 채동하의 손이 많이 간 앨범으로 직접 작사 작곡에 이어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그중 ‘Vinilla Sky’라는 곡은 2집 활동 후 인도와 네팔에서 체류 중일 때 인도의 한 장례식 풍경에서 화장 연기로 노랗게 물들은 하늘을 보고 만든 곡 제목이다. 아쉽게도 이 앨범도 긴 활동을 갖지는 못했다. 목디스크와 성대결절이 지병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얼마 뒤 20111VOS를 탈퇴한 박지헌과 옴드듀엣을 결성하여 어제 같은데라는 싱글 곡을 발표한다. 이 곡으로 기존 앨범들과 다르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2011526일 채동하는 숨진 채 발견된다. 사인은 자살인데 이 원인에 대해 20097월 자신과 매우 호흡이 잘 맞았던 매니저가 자살하여 숨진 것에 대한 죄책감과 매번 준비를 했던 열과 성에 비해 건강으로 인해 기대에 못 미친 활동과 이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그를 벼랑 끝에 몰아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사망일 다음날에는 일본 도쿄에서 공연이 잡혀있었다. 또한 한달 뒤에는 미니앨범 쇼케이스와 팬클럽과 생일파티를 앞둔 상황이었다.

 

현재 SG워너비를 만든 리더 채동하. 팀원들도 그가 나간 후 꾸준히 그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SG워너비 디지털 싱글 사랑법은 채동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또한 콘서트 ‘The Last’에서 아리랑이라는 곡에 그의 음성을 넣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3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SG워너비의 멤버 김진호는 채동하에 대해 "여자 친구처럼 세심한 부분까지도 날 걱정해 주던 형이었다. 그런 형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내게 크나큰 충격이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10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김진호는 추모곡 특집으로 채동하를 추모하며 SG워너비의 히트곡 살다가를 열창한다. 이중 우린 마지못해 웃는 거겠지, 우린 마지못해 살아가겠지파트를 채동하 육성을 넣으며 노래를 이어간다. 이날 이곡은 김진호를 불후의 명곡 우승으로 이끌었고 인터뷰에서 김진호는 채동하에게 한 마디 할 것을 요청받자 "... 이건 너무 잔인한데요."하면서 괴로워했다. 또한 방송에서 다비치 강민경은 채동하는 자신과 이해리에게 조언을 제일 많이 해주고 챙겨주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혼냈던 선배였다라고 말했다. 방송이 끝난 후 살다가는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하고 채동하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대중에게 아직 그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그 이름 채동하’. 대중들도 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채동하를 늘 그리워하고 그를 항상 마음 한 켠에 SG워너비 리더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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